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슬픈데, 실패한 인생을 살았노라고 한탄하는 아저씨들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지내는 건 고역이었다. 말이 안통한다는 느낌을 반복해서 받게 되면, 결국 상대가 아닌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모든 불행들이 내 입에서 나온 말, 빌어먹을 말 때문에 초래되었구나 싶은 자책감 조차도 지겨워질 무렵,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 조차 모르게 됐다. 아무리 사과해도 상황은 돌이켜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목요일의 두 번의 외출.
지난 목요일 누군가 중요한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연락이 와서, OO역으로 갔다. 스케줄이 잔뜩 있어서 점심 시간 1시간 정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해서, 12시에 만나기로 하고 11시 반쯤 OO역에 도착했다. 중간에 프로필을 보내달라는 문자 메시지가 와서, 이미 아침에 보냈다고 답장하고, 지하철역 근처 커피빈 3층, 창가 흡연석에 자리를 잡았다.
어쩐지 담배를 피우기도 귀찮은 기분이었는데, 2층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3층 흡연석에는 한 사람 밖에 없었는데, 한적한 느낌이 좋았지만, 곧 지루해졌다.
지루함을 달래려고 창가 자리를 잡았지만, 창밖의 한심스러운 풍경은 당혹스러웠다.
'도착했음, 회사 근처 커피빈 3층에 기다림'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황망하게 앉아 있는데, 어떤 남자가 건너 편 테이블 좌석에 앉으려고 하면서 앉아도 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 원참.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지,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2미터 정도 떨어진 테이블에 앉으면서 왜 나한테 양해를 구하는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힐끔 보니, 짙은 선글라스에 연미복 차림의 남자였다. 옷차림도 희한하구만.
만나려고 한 사람은 1시간이 넘도록 문자 메시지의 답장도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오전 회의가 길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1시간 반 걸려 도착해 1시간을 기다렸는데, 바람을 맞는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들어서 슬금슬금 짜증이 났다. 그때 도착한 문자 메시지. 오늘 7시 XX역 백화점에서 행사가 있으니 와달라는...다른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작가님도 소개해드릴게요.'
얼마 전 취소된 공연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람인데,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영화 관계일을 하면서 한국이나 일본 배우들의 현지 코디네이터, 에이전시등의 일을 하는 일본 사람이다. 한국어에 굉장히 능통한 20대 후반의 일본 여성.
그 때 시간이 12시 40분쯤이어서, 7시의 스케줄은 부담이 됐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오기가 귀찮아질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시 만나려던 사람에게 메시지와 전화를.
옆좌석의 남자는 동료가 도착해서 두 사람으로 늘어 있었는데, 패션쇼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 패션이나 광고쪽 사람인 것 같았다. 동료는 몇 분 있다가 자리를 떴다.
괜한 기분 탓일까 싶었는데, 선글라스의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고, 자꾸만 내쪽을 힐끔댔다. 40대로도 보이고, 50대로도 보였는데, 30대 일지도 모르겠다. 눈화장을 살짝 한 것 같았는데, 거친 얼굴 피부와의 조화가 묘했다. 남성으로 성전환한 중년 여성이 아닐까 싶기도...
불편한 시선과 바람 맞은 것에 대한 어이없음과 배고픔...
상당히 기분이 나빠지고 짜증이 솟구칠 상황이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안했다.
커피빈에 도착한지 1시간 30분이 지났을때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선글라스의 남자가 뒤따라 화장실로 오는 것이 아닌가?
오해겠지 싶으면서도 찝찝한 마음에 남자 화장실의 내부의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선글라스의 남자 역시 소변인 것 같은데, 일을 다 본 것 같은데도 꾸물댔다.
세면대 쪽으로 걸어가는데, 남자가 내쪽을 바라보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나로서는 시선을 바닥에 내릴 수 밖에.
제기랄, SCISSOR SISTERS 티셔츠 때문인가...
대단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서둘러 손을 씻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려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역시나 회의가 길어졌다는 이야기, 너무 미안해서 전화합니다...저녁에 만날까 했는데, 저녁에 선약이 있다는 이야기. 네. 네, 그럼 다음에 뵙죠, 뭐.
저녁의 작가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좀 늦을 것 같아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행사를 하느냐고 전화로 물었더니, 1시간 반 정도 예정이란다. 지금부터 준비하고 나가도 30분은 지각하겠구나 싶어서 또 다시 망설이다가, 결국 나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와서, 30분쯤 늦을거라고 말했다.
('가서 인사만 하고 빨리 돌아와야지')
백화점 10층에 도착해서 행사장 입구에 들어가니,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백화점으로 신청하셨나요? XX인터넷 서점으로 신청하셨나요?"
"매니저가 초대 명단에 써놨다고 하던데요"
"네? 무슨 매니저요? "
"XX씨 매니저요."
"아...XXX씨군요? 들어가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행사장은 넓었고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 무슨 행사인지 궁금해서 팜플렛을 보니 문학 콘서트란다.
맙소사.
빈자리 찾기도 힘들었는데, 뒤쪽에 듬성 듬성한 자리가 있어, 그 쪽으로 향했다.
통로쪽에 앉은 남자에게 손가락으로 빈 자리를 가리키며 까딱하니까 몸을 움추려 지나가게 해준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무례한 동작이었던 것 같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손가락 까딱하다니! 무심코 자주 하는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이런 버릇을 들인 것인지..)
내가 여길 왜 왔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날 초대한 사람이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게 아닌가? 연령을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여자분과 귓속말을 하고 있었는데, 대화가 잠깐 끊긴 순간 등을 살짝 두드려 고개를 돌리게 하고 인사를 했다.
무대에는 두 사람의 일본 작가와 두 사람의 번역가, 사회자(팜플렛 표지에는 북컬럼니스트, 팜플렛 속지에는 출판컬럼니스트라고 소개 되어 있다)와 통역자가 있었다.
일본 작가 중 한 사람은 여성 작가였는데, 오른 쪽 45도에서 찍은 사진으로 익숙한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진과 실물이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느끼는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혼란스러워 하며, 작가에게 외모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그 작가의 책에는 왜 늘 그 사진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통역자의 특이한 이름이 기억에 있었는데, 몇 년 전 일본문화원 행사 때 명함을 받았던 사람이다.
30분이 아닌 40분 늦게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행사는 바로 조금 전 시작한 느낌이다.
관객을 훑어보니,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9대1쯤 되보였다.
이 사람들이 일본 연애 소설의 팬들이구나...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인상들.
그런데, 몇몇 남자들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큰 머리통에 좁은 어깨는 그렇다치고, 국적불명의 묘한 패션들. 아마도 일본풍 간지 패션이라고들 부르는 옷차림 같았는데, 일본에 살았을 때 좀처럼 보지 못했던, 오히려 홍대에 가서 흔하게 보게된 그런 패션이었다. 왜 남의 패션에 내가 민망해 하는건지 그 느낌을 알 수 없어 하면서 괜히 왔구나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연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연애 소설을 쓰고(확실치 않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이 스믈스믈 들었다. 일반화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어쩐지 연애의 에너지를 느낄 수 없는 무기질의 관객들로 보이는 걸 어쩌랴.
꽤 쉬운 일본어로 이야기하는데도, 통역이 있고나서야 웃음이나 환호가 나왔다.
작가의 밴드 공연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이 공연에 왔을까?
안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공짜 공연이라면 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러보니, 관객들은 저마다 책을 들고 있었는데, 행사 증정본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나를 초대한 일본 여성분과 절친한 친구라는 '미녀들의 수다'의 출연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화장을 안하면 사람들이 못알아본다고 자주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역시나 화장이 굉장히 짙었다. 행사장 안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짙은 화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학 콘서트라는 TPO에 맞는 옷차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미녀'는 다과를 겸한 출판 기념 파티를 예상한 것 같은 차림이다. 그외에 TV에서 보던 것보다 어깨가 상당히 넓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앉은 자리가 소위 '관계자'석이라는 걸 눈치챘다. 연애 소설은 커녕 문학과도 아무런 인연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고, 연예인 로드 매니저 타입의 남자들이 우왕좌왕했다. 얼굴은 우락부락한데, 운동은 못할 것 같은 사람들.
궁기가 가득한 찌푸린 얼굴에 안맞는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출판관계자들 같았다.
일본어'만' 잘할 것 같은 여자들은 행사 스탭으로 보였는데 역시 화장에 서툴렀고, 진행도 그만저만.
하는 일 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자기들끼리(한국인들끼리) 일본어로 소근대기.
작가들은 번갈아 낭독을 했고, 소개를 받으러 온 작가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관객들의 질문과 작가들의 대답.
이 행사의 참여를 위해 해외에 나갈 일정을 미뤘다는 남성 관객이 마지막 질문자였는데, 작가들에게 일본에 여행할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했다.
행사 진행 내내 계속 터지는 휴대폰 카메라, DSLR 플래시에 눈이 아팠다. 대체 왜들 그렇게 사진을 찍는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럭저럭 행사가 끝나고, 대기실로 가서 작가를 소개받았다.
작가들이 대기실로 퇴장해 버리자, 행사장에 멍하니 있던 두 사람의 번역자들에게 관객들이 몰려가서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꿩대신 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아, 번역자분들 인기가 좋으시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의 표정이 왠지 필사적으로 보였다.
작가 대기실에서 조금 놀라운 광경이 있었는데, 행사 중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정신없게 우왕좌왕했던 희멀겋고 덩치 큰 남자가 그 작가를 포옹하는 것이었다. 작가와의 친분을 눈에 띄게 주위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는데, 작가가 꽤나 놀란 눈치였다.
아니, 이것도 콘서트라고! 이건 마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록커에게 멋졌어! 최고였어라고 하면서 감격을 이기지 못하는 프로모터가 백스테이지에서나 연출할 법한 광경 아닌가?
아직까지도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작가와 짧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일본 여성분이 두 사람을 더 소개해 준다.
한 사람은 음반회사 과장, 한 사람은 영화 일을 하는 그 일본 여성분의 동료.(둘다 한국 사람, 재미있는 건 두 사람중 한 사람의 명함에 일본식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는 것. 꽤나 신기해서 그 분을 일본식 이름으로 두 어번 불러봤다.)
명함을 받고, 서둘러 행사장을 나오는데, 영화일을 하는 분과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됐다.
'누님이 꼭 소개해주고 싶은 분이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아. 네. 메일에서 성함을 봤어요. 반갑습니다. 성함때문에 여자분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나저나 오늘 30분 늦게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온 것 같네요'라는 내 말에 키득거리길래 순간적으로 호감을 느꼈다. 백화점을 빠져나와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고, 같이 지하철을 탔다.
이런 저런 이야기(묻지 않았는데, 대기실의 포옹남은 이 분이 계셨던 회사의 이사라고 한다).
다음에 또 뵙죠. 그 때 이야기 많이 나누죠. 네.네.
(포스팅을 하고 나서, 목요일의 문학 콘서트를 검색해보니, 행사에 참여했던 블로거들의 너무 좋았다는 자랑과 부러워하는 댓글들이 있었다. 관객들에게 책을 두 권씩 증정한 모양이다. 작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경험일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행도 어설펐고, 행사의 질도 얄팍했다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행사가 그랬다면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은데...
나야 애독자로서 참가한 것이 아니니까, 당연히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겠다.
어떤 사람은 주최측이 플래쉬를 너무 터트려서 짜증이 났다고 하면서, 자기가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잔뜩 올렸던데, 주최측이 행사 기록을 위해 찍은 건 짜증나고 자신이 블로그에 올리려고 찍은 사진은 괜찮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분은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주최측의 플래쉬보다 수 십배는 더 많은 관객들의 플래쉬때문에 눈이 아파 무대를 보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그러던 중, 목요일의 두 번의 외출.
지난 목요일 누군가 중요한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연락이 와서, OO역으로 갔다. 스케줄이 잔뜩 있어서 점심 시간 1시간 정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해서, 12시에 만나기로 하고 11시 반쯤 OO역에 도착했다. 중간에 프로필을 보내달라는 문자 메시지가 와서, 이미 아침에 보냈다고 답장하고, 지하철역 근처 커피빈 3층, 창가 흡연석에 자리를 잡았다.
어쩐지 담배를 피우기도 귀찮은 기분이었는데, 2층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3층 흡연석에는 한 사람 밖에 없었는데, 한적한 느낌이 좋았지만, 곧 지루해졌다.
지루함을 달래려고 창가 자리를 잡았지만, 창밖의 한심스러운 풍경은 당혹스러웠다.
'도착했음, 회사 근처 커피빈 3층에 기다림'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황망하게 앉아 있는데, 어떤 남자가 건너 편 테이블 좌석에 앉으려고 하면서 앉아도 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 원참.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지,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2미터 정도 떨어진 테이블에 앉으면서 왜 나한테 양해를 구하는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힐끔 보니, 짙은 선글라스에 연미복 차림의 남자였다. 옷차림도 희한하구만.
만나려고 한 사람은 1시간이 넘도록 문자 메시지의 답장도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오전 회의가 길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1시간 반 걸려 도착해 1시간을 기다렸는데, 바람을 맞는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들어서 슬금슬금 짜증이 났다. 그때 도착한 문자 메시지. 오늘 7시 XX역 백화점에서 행사가 있으니 와달라는...다른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작가님도 소개해드릴게요.'
얼마 전 취소된 공연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람인데,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영화 관계일을 하면서 한국이나 일본 배우들의 현지 코디네이터, 에이전시등의 일을 하는 일본 사람이다. 한국어에 굉장히 능통한 20대 후반의 일본 여성.
그 때 시간이 12시 40분쯤이어서, 7시의 스케줄은 부담이 됐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오기가 귀찮아질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시 만나려던 사람에게 메시지와 전화를.
옆좌석의 남자는 동료가 도착해서 두 사람으로 늘어 있었는데, 패션쇼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 패션이나 광고쪽 사람인 것 같았다. 동료는 몇 분 있다가 자리를 떴다.
괜한 기분 탓일까 싶었는데, 선글라스의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고, 자꾸만 내쪽을 힐끔댔다. 40대로도 보이고, 50대로도 보였는데, 30대 일지도 모르겠다. 눈화장을 살짝 한 것 같았는데, 거친 얼굴 피부와의 조화가 묘했다. 남성으로 성전환한 중년 여성이 아닐까 싶기도...
불편한 시선과 바람 맞은 것에 대한 어이없음과 배고픔...
상당히 기분이 나빠지고 짜증이 솟구칠 상황이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안했다.
커피빈에 도착한지 1시간 30분이 지났을때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선글라스의 남자가 뒤따라 화장실로 오는 것이 아닌가?
오해겠지 싶으면서도 찝찝한 마음에 남자 화장실의 내부의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선글라스의 남자 역시 소변인 것 같은데, 일을 다 본 것 같은데도 꾸물댔다.
세면대 쪽으로 걸어가는데, 남자가 내쪽을 바라보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나로서는 시선을 바닥에 내릴 수 밖에.
제기랄, SCISSOR SISTERS 티셔츠 때문인가...
대단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서둘러 손을 씻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려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역시나 회의가 길어졌다는 이야기, 너무 미안해서 전화합니다...저녁에 만날까 했는데, 저녁에 선약이 있다는 이야기. 네. 네, 그럼 다음에 뵙죠, 뭐.
저녁의 작가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좀 늦을 것 같아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행사를 하느냐고 전화로 물었더니, 1시간 반 정도 예정이란다. 지금부터 준비하고 나가도 30분은 지각하겠구나 싶어서 또 다시 망설이다가, 결국 나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와서, 30분쯤 늦을거라고 말했다.
('가서 인사만 하고 빨리 돌아와야지')
백화점 10층에 도착해서 행사장 입구에 들어가니,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백화점으로 신청하셨나요? XX인터넷 서점으로 신청하셨나요?"
"매니저가 초대 명단에 써놨다고 하던데요"
"네? 무슨 매니저요? "
"XX씨 매니저요."
"아...XXX씨군요? 들어가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행사장은 넓었고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 무슨 행사인지 궁금해서 팜플렛을 보니 문학 콘서트란다.
맙소사.
빈자리 찾기도 힘들었는데, 뒤쪽에 듬성 듬성한 자리가 있어, 그 쪽으로 향했다.
통로쪽에 앉은 남자에게 손가락으로 빈 자리를 가리키며 까딱하니까 몸을 움추려 지나가게 해준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무례한 동작이었던 것 같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손가락 까딱하다니! 무심코 자주 하는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이런 버릇을 들인 것인지..)
내가 여길 왜 왔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날 초대한 사람이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게 아닌가? 연령을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여자분과 귓속말을 하고 있었는데, 대화가 잠깐 끊긴 순간 등을 살짝 두드려 고개를 돌리게 하고 인사를 했다.
무대에는 두 사람의 일본 작가와 두 사람의 번역가, 사회자(팜플렛 표지에는 북컬럼니스트, 팜플렛 속지에는 출판컬럼니스트라고 소개 되어 있다)와 통역자가 있었다.
일본 작가 중 한 사람은 여성 작가였는데, 오른 쪽 45도에서 찍은 사진으로 익숙한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진과 실물이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느끼는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혼란스러워 하며, 작가에게 외모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그 작가의 책에는 왜 늘 그 사진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통역자의 특이한 이름이 기억에 있었는데, 몇 년 전 일본문화원 행사 때 명함을 받았던 사람이다.
30분이 아닌 40분 늦게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행사는 바로 조금 전 시작한 느낌이다.
관객을 훑어보니,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9대1쯤 되보였다.
이 사람들이 일본 연애 소설의 팬들이구나...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인상들.
그런데, 몇몇 남자들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큰 머리통에 좁은 어깨는 그렇다치고, 국적불명의 묘한 패션들. 아마도 일본풍 간지 패션이라고들 부르는 옷차림 같았는데, 일본에 살았을 때 좀처럼 보지 못했던, 오히려 홍대에 가서 흔하게 보게된 그런 패션이었다. 왜 남의 패션에 내가 민망해 하는건지 그 느낌을 알 수 없어 하면서 괜히 왔구나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연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연애 소설을 쓰고(확실치 않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이 스믈스믈 들었다. 일반화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어쩐지 연애의 에너지를 느낄 수 없는 무기질의 관객들로 보이는 걸 어쩌랴.
꽤 쉬운 일본어로 이야기하는데도, 통역이 있고나서야 웃음이나 환호가 나왔다.
작가의 밴드 공연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이 공연에 왔을까?
안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공짜 공연이라면 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러보니, 관객들은 저마다 책을 들고 있었는데, 행사 증정본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나를 초대한 일본 여성분과 절친한 친구라는 '미녀들의 수다'의 출연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화장을 안하면 사람들이 못알아본다고 자주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역시나 화장이 굉장히 짙었다. 행사장 안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짙은 화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학 콘서트라는 TPO에 맞는 옷차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미녀'는 다과를 겸한 출판 기념 파티를 예상한 것 같은 차림이다. 그외에 TV에서 보던 것보다 어깨가 상당히 넓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앉은 자리가 소위 '관계자'석이라는 걸 눈치챘다. 연애 소설은 커녕 문학과도 아무런 인연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고, 연예인 로드 매니저 타입의 남자들이 우왕좌왕했다. 얼굴은 우락부락한데, 운동은 못할 것 같은 사람들.
궁기가 가득한 찌푸린 얼굴에 안맞는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출판관계자들 같았다.
일본어'만' 잘할 것 같은 여자들은 행사 스탭으로 보였는데 역시 화장에 서툴렀고, 진행도 그만저만.
하는 일 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자기들끼리(한국인들끼리) 일본어로 소근대기.
작가들은 번갈아 낭독을 했고, 소개를 받으러 온 작가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관객들의 질문과 작가들의 대답.
이 행사의 참여를 위해 해외에 나갈 일정을 미뤘다는 남성 관객이 마지막 질문자였는데, 작가들에게 일본에 여행할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했다.
행사 진행 내내 계속 터지는 휴대폰 카메라, DSLR 플래시에 눈이 아팠다. 대체 왜들 그렇게 사진을 찍는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럭저럭 행사가 끝나고, 대기실로 가서 작가를 소개받았다.
작가들이 대기실로 퇴장해 버리자, 행사장에 멍하니 있던 두 사람의 번역자들에게 관객들이 몰려가서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꿩대신 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아, 번역자분들 인기가 좋으시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의 표정이 왠지 필사적으로 보였다.
작가 대기실에서 조금 놀라운 광경이 있었는데, 행사 중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정신없게 우왕좌왕했던 희멀겋고 덩치 큰 남자가 그 작가를 포옹하는 것이었다. 작가와의 친분을 눈에 띄게 주위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는데, 작가가 꽤나 놀란 눈치였다.
아니, 이것도 콘서트라고! 이건 마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록커에게 멋졌어! 최고였어라고 하면서 감격을 이기지 못하는 프로모터가 백스테이지에서나 연출할 법한 광경 아닌가?
아직까지도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작가와 짧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일본 여성분이 두 사람을 더 소개해 준다.
한 사람은 음반회사 과장, 한 사람은 영화 일을 하는 그 일본 여성분의 동료.(둘다 한국 사람, 재미있는 건 두 사람중 한 사람의 명함에 일본식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는 것. 꽤나 신기해서 그 분을 일본식 이름으로 두 어번 불러봤다.)
명함을 받고, 서둘러 행사장을 나오는데, 영화일을 하는 분과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됐다.
'누님이 꼭 소개해주고 싶은 분이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아. 네. 메일에서 성함을 봤어요. 반갑습니다. 성함때문에 여자분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나저나 오늘 30분 늦게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온 것 같네요'라는 내 말에 키득거리길래 순간적으로 호감을 느꼈다. 백화점을 빠져나와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고, 같이 지하철을 탔다.
이런 저런 이야기(묻지 않았는데, 대기실의 포옹남은 이 분이 계셨던 회사의 이사라고 한다).
다음에 또 뵙죠. 그 때 이야기 많이 나누죠. 네.네.
(포스팅을 하고 나서, 목요일의 문학 콘서트를 검색해보니, 행사에 참여했던 블로거들의 너무 좋았다는 자랑과 부러워하는 댓글들이 있었다. 관객들에게 책을 두 권씩 증정한 모양이다. 작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경험일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행도 어설펐고, 행사의 질도 얄팍했다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행사가 그랬다면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은데...
나야 애독자로서 참가한 것이 아니니까, 당연히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겠다.
어떤 사람은 주최측이 플래쉬를 너무 터트려서 짜증이 났다고 하면서, 자기가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잔뜩 올렸던데, 주최측이 행사 기록을 위해 찍은 건 짜증나고 자신이 블로그에 올리려고 찍은 사진은 괜찮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분은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주최측의 플래쉬보다 수 십배는 더 많은 관객들의 플래쉬때문에 눈이 아파 무대를 보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