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롤스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접하면서 의아했던 것은 니코 디 파로가 온다는 내용이었다.
니코 디 파로는 1998년 1월 15일, 운전 중 교통 사고를 당해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었고, 기적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좌반신 불구가 되어 있었다.
그런 니코가 온다니???!!!
Nico Di Palo e New Trolls
뉴트롤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보컬.
삐노 스카르페티니와 비또리오 데 스칼찌 두 사람은 1966년 뉴트롤스의 전신이 되는 i trolls라는 밴드를 만들고 조르지오 다다모와 지아니 벨레노와 함께 활동하게 되는데, 이 때 이탈리아의 음악 평론가가 제노바의 젊은이들 중에 함께 밴드를 이루었으면 하는 뮤지션 5명을 선정하는 기사를 쓰게 된다.
그 5명은 비또리오 데 스칼찌와 니코 디 파로, 조르지오 다다모, 지아니 벨레노, 마우로 키아루지였고, 그 기사에 자극을 받은 5명이 New Trolls라는 이름으로 1967년 부터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이후 뉴트롤스는 수많은 뮤지션들이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는데, 비또리오 데 스칼찌, 니코 디 파로, 조르지오 다다모, 지아니 벨레노, 통상, 이 네 사람이 핵심적인 오리지널 멤버로 인지된다.
Vittorio De Scalzi e Nico Di Palo
그들의 역사에 있어서 비또리오 데 스칼찌와 니코 디 파로의 음악적인 갈등과 불화는 유명한 이야기고, 그들이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면서 성취한 음악적 성취들은 뉴트롤스의 음악을 이해하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기도 했다.
데뷔 당시 칸초네와 구별된 이탈리안 팝(팝 이탈리아노)의 노선을 추구한 뉴트롤스는 60년대 말, 70년대 초 세계적인 록 페스티발 열풍을 목도하게 되고, 직접 여러 록 페스티발에 참여하게 되면서 격렬한 음악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 이들의 음악적 실험과 탐구는 비또리오의 경우는 재즈록, 니코는 하드록 노선에 치중되게 되면서 갈등을 빚게되는데, Concerto Grosso Per 1과 함께 그들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되는 UT는 니코가 비또리오를 배제하고 나머지 멤버들의 동의를 구해 제작한 앨범이기도 했다.
비또리오와 니코가 벌인 음악적 주도권 다툼은 밴드의 와해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뉴트롤스의 음악이 풍부해진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76년 비또리오와 니코가 화해하고 다시 만나 Concerto Grosso Per 2를 제작하고, 1977년에 발매된 Una Notte Sul Mote Calvo는 니코가 빠진 비또리오의 주도하에 제작되지만, 그 이후 두 사람은 New Trolls의 역사를 계속 함께 써나간다.
니코의 비극적인 사고로 뉴트롤스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정지되었다. 니코의 사고가 안타까운 것은 90년대 들어 뉴트롤스가 정력적인 활동을 개시했다는 점인데, 1996년 Il Sale Dei New Trolls가 니코와 비또리오가 함께 제작한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되고만 것이다. (Il Sale dei new Trolls의 라인업은 비또리오, 니코, 알피오 비딴자)
나는 늘 비또리오 보다는 니코의 기타와 보컬을 좋아했고, 따라서 작년 일본에서 뉴트롤스의 공연을 봤을 때도 니코의 부재가 너무도 안타깝기만 했었다.
3개의 뉴트롤스, La Storia Dei New Trolls e Il Mito Dei New Trolls e Il Cuore Dei New Trolls
니코가 더 이상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뉴트롤스는 자연 해체하는 것이 아닌가했는데, 비또리오 데 스칼찌는 2001년 La Srotia Dei New Troll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 2개의 정규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다. (비또리오 데 스칼찌는 자신의 명의로 La Storia Dei New Trolls라는 제목의 라이브 앨범과 La Storia Dei New Trolls라는 명의로 Concerto Grosso Live라는 제목의 라이브 앨범을 각각 발매한다.)
La Storia Dei New Trolls는 또 하나의 명그룹 Latte e Miele의 드러머 알피오 비딴자가 합류하고, 뉴트롤스의 명반 UT와 Searching for a land에 참여했던 마우리지오 살비가 이름을 올렸다.
La Storia Dei New Trolls가 화제가 된 것은 뉴트롤스의 부활이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앨범에 수록된 라이브 퍼포먼스가 경이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작년 일본 공연 역시 La Storia Dei New Trolls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
한편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던 니코는 리키 벨로니, 조르지오 우사이와 함께 Il Mito Dei New Troll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선언한다.
또한 뉴트롤스의 오리지널 드러머, 지아니 벨레노가 단독으로 il Cuore Dei New Ttrolls라는 밴드를 결성, Cocert Grosso Per 3 을 제작하겠다고 공표한다.
다시 New Trolls, 한국 공연
비또리오, 니코, 알피오 비딴자. 이번 한국 공연의 메인 멤버 3사람은 뉴트롤스라는 명의로 발매된 마지막(현재로서는) 정규 앨범 Il Sale Dei New Trolls의 라인업이다.
따라서 il storia나 il mito라는 단어를 덧 붙일 필요가 없는, 명실공히 New Trolls의 공연이다.
앞서 쓴 것처럼, 이번 공연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니코에 있었다. 보컬/기타/키보드라고 씌여있긴 하지만, 그가 과연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그 전설적인 솔로를 들려줄 수 있을까? 몇 년 전 Il Mito Dei New Trolls로 니코가 활동 재개를 선언하긴 했지만, 리키 벨로니의 이름은 니코가 연주가 아닌 보컬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들게 했었다. (리키 벨로니는 Concerto Grosso Per 2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한 이후, 80년대 뉴트롤스에서 계속 니코와 함께 기타를 담당했던 인물. Cocerto Grosso Per 2 LP의 앞면은 니코, 뒷면은 리키가 기타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멤버들이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할 때,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비또리오가 니코를 부축하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니코는 좌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오른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외에 다른 연주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는 뉴트롤스의 멤버로 무대에 당당히 있었고, 관객들의 환호에 기뻐하는 듯 했다.
보컬 역시 비또리오의 몫이었는데, 1969년 작 Visioni 에서는 좀 더 길게 니코의 보컬을 들을 수 있었다. 감동.
Concerto Grosso Per 3
콘체르토 그로소 파트 3은 뉴트롤스의 팬, 특히 한국과 일본의 팬들이 20년 가까이 기다려왔던 것이다. 1980년 작 FS를 접하고 드디어 콘체르토 그로소 3부의 조짐을 알리는 음반이 나왔다고 평론가들의 흥분하던 시기도 이미 까마득, 2부가 나온지 30년이 넘어 3부가 라이브로 공개되었다.
사실 기다림 조차 오랜 추억이 되어버린 그 음악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뉴트롤스의 팬이라면, 콘체르토 그로소 3부가 발표된다는 소식에 반가움보다는 우려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음반 차트에서 Per 1은 3위 (그들 역대 최고 순위), Per 2는 25위까지 올랐지만, Per 2가 보다 상업적이고, Per 1에 비해 음악적인 긴장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한국 팬들의 대체적인 평가가 있기 때문에, Per 3은 Per 1 보다는 Per 2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나 역시 지아니 벨레노가 먼저 천명한 Concerto Grosso Per 3에 대응해 비또리오측에서 서둘러 제작한 작품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공연한 걱정이었다.
7부작으로 구성된 Concerto Grosso Per 3은 뉴트롤스의 또 하나의 역작이다.
Per 1과 Per 2를 떠올리게 하는 주제들이 얼핏 얼핏 들렸는데, 그것은 자가복제가 아닌 창조적인 연속성이었고,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21세기판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감동이고 흥분이었다.
이미 예순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노뮤지션의 신작.
그 연배에 신작을 발표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랍지만, 소위 '전성기 시절'에 뒤떨어지는 음악이 전혀 아니었다.
그의 창작력과 열정에 새삼 부끄러워졌다.
뉴트롤스 한국 공연과 쓰레기들
객석은 대다수 30대로 보이는 관객으로 꽉차있었고, 공연 분위기도 좋았다.
인터벌 15분을 포함하여 3시간이 넘는 런닝타임과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세트리스트는 흥겹고도 감동적인, 높은 수준의 대중음악 공연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앵콜 (4월 5일의 앵콜곡은 Le Roi Soreil, Concerto Grosso Per 3 7악장, Adagio(Shadows) 3곡) 중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해댔다. 공연장측에서도 사진 촬영 금지를 고지했고, 진행 요원들이 계속 객석을 오가며 사진 촬영을 막았지만, 마지막 Adagio가 연주될 때는 관객의 절반 이상(어쩌면 더 될 지도)이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로 플래쉬를 쉴새 없이 터뜨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도대체 왜 그렇게 사진들을 찍어대는 것일까?
알량한 블로그에 올려 놓으려고?
연주자들 면전에 수없이 플래쉬를 터트려가며, 연주자와 다른 관객들을 방해하는 쓰레기들 때문에 기분이 완전히 잡쳐버렸다.
나도 모르게, 주변 관객들에게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고 할까 하려다가, 너무 수가 많아서 포기해 버렸다.
어떤 미친 인간은 DSLR을 들고, 또 나와라, 또 나와라하면서 소리치고 같이 온 동료들과 히히덕거리고 있었는데, 한심하고 추해보였다.
앵콜이 공연의 감동적인 마무리가 되지 못하고 어수선하고 왁짜한 분위기로 마무리 되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공연은 무대 위의 아티스트들만이 아닌 관객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우리 나라 관객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내한 공연을 온 해외 뮤지션들이 한국 관객들이 가장 열정적이라고 놀랍다, 굉장하다고 말한다고 하는 것이 있다. (특히 일본 관객과 비교하면서)
나는 일본에서 몇 년간 살면서 적지 않은 해외 뮤지션의 공연을 봤는데, 그 사람들은 일본 관객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다. 최고다, 굉장하다, 일본 관객이 세계 최고다라고.
그런 상투적인 립서비스에 좋아하던 말던 내 알바 아니지만, 제발 공연장에서의 기본적인 매너만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뉴트롤스 내한 공연은 내가 평생동안 본 공연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무분별하게 사진 촬영을 해댄 공연이다.
공연은 좋았지만, 기본적인 관객으로서의 매너가 없는 그 수백명의 쓰레기들, 옥의 티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가 많았던 쓰레기들 때문에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는 공연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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