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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본 여성 뮤지션의 자살

Slapp Happy 2006. 5. 12. 16:42
어제 업무 겸 친분 관계로 모처에서 일본 음악관계자 한 사람을 만났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메이저 밴드 멤버 한 사람이 찾아왔다.
이번 달에 하는 공연 안내 찌라시를 가져왔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저 밴드, 메이저 아티스트가 직접 공연을 홍보, 안내하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다.) 밴드가 그들과 친분이 있거나 음악성이 어울리는 밴드들을 모와서 직접 기획하는, 매년 시리즈로 개최하는 공연이었다.
공연 찌라시에 실린 사진을 보는데, 그 밴드의 여성 멤버가 빠져있어서,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봤더니, 그 밴드 멤버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밴드를 그만두었다고 대답했다.
4년전에 결성하고 3년전에 메이저에 데뷔한 꽤 유명한 밴드였지만, 그 멤버와 인사하고 직접 대화하는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여성 멤버의 경우는 작년에 다른 자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소개를 정식으로 한 다음, 이야기를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그 밴드 멤버는 먼저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후에, 관계자에게 그 여성 멤버가 밴드를 그만 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실연같은 사생활 문제일까? 아니면 멤버간 음악적인 불화?
관계자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그 여성 멤버가 몇 달 전에 자살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소식을 뉴스나 잡지에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꽤 놀랐는데, 미디어에는 정확히 알리지 않고 밴드에서 탈퇴한 정도로만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몇 달 전부터 투어의 사진에서 그녀가 빠져있고, 세션 멤버가 참여하고 있는데, 그녀의 부재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실연 같은 게 아니고, 원래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는데, 삶과 밴드 활동의 극심한 피로에 너무나 지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이나, 직접 봤던 인상도 유명한 메이저 밴드의 멤버 답지 않게 무척 외롭고 심성이 약해보였던 기억이 난다.
밖에서 보면, 성공적인 캐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메이저 밴드의 멤버였지만, 개인이 겪는 하루 하루의 삶은 더욱 힘겨워진 듯 하다.

일본의 아티스트들이 자살을 하는 일이 흔하냐고 물어보았는데, 아티스트의 자살보다 팬들의 자살이 훨씬 많다고 한다.
또 다른 메이저 밴드(그들 역시 작년에 만나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의 경우는 그들의 팬들이 자살을 너무 많이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밴드의 가사와 음악, 세계관이 매우 염세적이어서 그러한 성향의 팬들이 많이 모이고, 이어서 계속 팬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자살을 하는 팬들은 거의 100% 모두 20대 여성들이라고 한다.
이런 일들은 미디어나 외부로는 노출이 거의 되지 않기 때문에, 아티스트들 자신이나 가까운 관계자들 외에는 잘 알 수 없는 일이다.

외국인으로서 타국에 살면서, 그들의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겪게되는 삶의 질감과 느낌은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너무나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종종 받는다.  

음반, 공연, 잡지가 아닌 실제의 자리에선 단 한 번 만났던 사람이지만, 뒤늦게 들은 그 사람의 자살 소식은 놀라움과 함께, 관념이 아닌 죽음의 현실성으로 느껴졌다. 기분 탓이겠지만, 그 사람의 생전(이 단어처럼 쓰기 불편한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사진을 보니, 더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나는 당황했고 왠지모르게 난처해졌다.